가상자산 과세 또 미뤄지나 ··· 인프라·제도 여전히 미흡

한국이 2027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에 여전히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오랜 기간 지연돼 온 암호화폐 세제 도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기술적 준비 작업, 반복된 연기에 핵심 인프라와 규제 지침이 여전히 마련되지 않아 네 번째 연기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27년 가상자산 과세 ··· 여전히 인프라 미흡
국내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처음 법령이 통과돼 2022년 시행이 목표였다. 그러나 일정이 세 차례나 미뤄지며 적용 시점은 2023년, 2025년을 거쳐 현재 2027년까지 유예됐다.
관련 기관과 연구자들은 불명확한 과세 기준, 미비한 신고 시스템, 정치적 교착 상태 등 지연의 근본 원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최근 국내 거래소에서 100종 이상의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분류하고 주식과 유사한 약 20퍼센트 세율을 적용하는 등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연간 250만 원 초과 가상자산 이익에 22퍼센트 과세를 계획하고도 시스템 부재로 시행을 거듭 미루는 실정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 선임연구위원은 잇따른 연기에 대해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평가하며 선진국 가운데 이렇게 반복적으로 세법 시행을 늦춘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연기 이후 11개월이 지났지만 필요한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는 꾸려지지 않았고 가상자산 과세는 국세 행정 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에어드랍, 스테이킹 보상, 채굴, 대출, 하드포크 등 다양한 방식의 가상자산 소득을 어떻게 과세할지에 대한 정부의 기준도 여전히 불명확하다. 거래 데이터 수집, 납세자 확인, 해외 거래 추적 시스템 역시 미완성 단계다.
이 같은 준비 부족으로 지난 9월에 발표된 2025년 세법 개정안에도 사실상 2024년 연기 당시의 문구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며 실질적인 업데이트가 포함되지 않았다.
가상자산 관련 인프라 및 제도 여전히 미흡
소매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인증 사용자 수는 2025년 상반기 기준 1077만 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명확한 규칙 없이 가상자산 과세를 강행할 경우 정부가 법적 분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정치적 갈등도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시장 성장을 보호하고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행 연기를 주장해 왔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초기에는 연기에 반대했으나 최근에는 연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일부 의원들은 2027년부터 가상자산 거래 데이터의 자동 국경 간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OECD의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 충족을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최종적인 세제가 마련되지 않은 와중에도 가상자산 관련 세금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
국세청은 블록체인 분석 도구를 활용해 거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며 체납자의 콜드 월렛(물리적 코인 지갑) 또한 추적 및 압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세청은 1만 4000명이 넘는 체납자로부터 1460억 원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압수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직접 대응에 나서고 있다. 청주시는 2021년부터 주민 203명의 암호화폐를 압수해 자체 거래소 계좌를 통해 청산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등 다른 지자체들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탈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해외 또는 탈중앙화 플랫폼 이용자들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인정한다.
연구원들은 남은 과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할 경우 2027년 시행 일정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주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세정연구팀장은 가상자산 과세가 시작된 뒤에도 모호성이 남아 있으면 법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남은 기간 동안 규정을 명확히 하고 국가 간 정보 공유 체계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