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은 뛰는데 비트코인은 왜 멈춰 섰나?

수년간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열렬한 지지자들로부터 금보다 훨씬 우월한 자산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시장의 판단은 이 같은 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금의 강세장은 좀처럼 식을 기미가 없다. 금 가격은 최근 한 달 동안만 25% 상승했고, 6개월 기준으로는 66%, 5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200% 가까이 뛰었다. 이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큰 폭으로 앞지르는 성과다.
반면 비트코인은 한 달 전보다 2.5%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 6개월 동안 25%의 가치 하락을 기록했다. 2021년 이후 누적 수익률 역시 156%로, 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성과에 그치고 있다.
금뿐만 아니라 다른 원자재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가 확산되면서 현물 은 가격은 이번 주 온스당 12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최근 몇 달 사이 ‘대역전’이 실제로 벌어졌다. 2025년 4월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조8,500억 달러로, 은(1조8,400억 달러)을 근소하게 앞섰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은은 랠리를 이어가며 시가총액이 6조7,000억 달러까지 불어난 반면, 비트코인은 1조7,500억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구리 역시 강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5년은 지난 10년간 구리 가격이 가장 크게 오른 해로 기록됐다. 글로벌 공급 부족과 재생에너지 전환이 맞물리며 가격은 톤당 1만4,000달러를 넘어섰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귀금속 시장에 형성된 ‘극단적 탐욕(extreme greed)’ 국면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최근 몇 달 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분위기다. 랠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예도 있다. 금은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조6,000억 달러 늘었는데, 이는 전 세계 비트코인 시가총액 전체에 맞먹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애널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이 2년 전 현물 ETF 도입 이후 하나의 성숙한 자산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라고 설명한다. 월가 자금이 유입되면서 과거 투자자들을 매료시켰던 극단적인 변동성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더 이상 하늘을 찌르는 ‘갓 캔들(God candle)’은 보기 힘들지만, 그만큼 급락 위험도 완화됐다는 의미다.
한편 시장에서는 지난해 10월 10일 발생한 급락의 여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추측이 확산되며 대규모 매도세가 쏟아졌고, 바이낸스의 인프라가 이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 이후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금이 특히 각광받는 이유도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면서, 그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베스코(Invesco)의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새로운 이정표를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정책 수단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트코인은 월가에서 현물 ETF로 상당한 자금이 유입되며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점차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NYDIG는 금이 여전히 훨씬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은 수십 년에 걸친 제도적 전통과 시장 사이클 전반에 걸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 왔다. 반면 비트코인은 아직 채택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자산 배분자들은 비트코인을 구조적인 헤지 자산이 아니라 전술적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이 4년 주기의 사이클을 따라 움직여 왔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신중함을 키우는 요인이다. 비트코인은 2018년에 74% 급락했고, 2022년에도 64%의 조정을 겪었다. 시장 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2026년에 비슷한 조정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비트코인이 급등 이후 항상 조정을 겪어왔듯, 금과 은 역시 향후 “지저분하고 장기적인 되돌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귀금속 투자 트레이드는 이미 지나치게 과열된 상태라는 지적이다.
단기적으로는 비트코인이 더 어려운 국면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보도에서 “오랜 비트코인 신봉자들조차 이제는 주식, 귀금속, 예측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비트코인이 더 이상 가장 빠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한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이 10만 달러 이상에서 의미 있는 기간 동안 거래될 수 있어야만 그 존재감을 다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9만 달러 선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상당히 높은 허들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