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럽 관세 발표 후폭풍… 암호화폐 시장서 8억7,500만 달러 증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둘러싼 갈등을 이유로 유럽 8개국에 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암호화폐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발표 후 24시간 동안 약 8억7,500만 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고, 비트코인은 3% 하락해 9만2,000달러 선까지 밀렸다.
트럼프의 관세 발언은 주말 휴일로 거래가 뜸한 시점에 나오며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청산된 포지션의 약 90%가 롱 포지션이었으며, 유럽 각국 정상들은 긴급 회동에 나서 전례 없는 보복 조치까지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을 통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에 대해 2월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그린란드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매입하는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6월 1일부터는 이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은 즉각 반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시장 접근을 차단하고 광범위한 제재를 가능하게 하는 EU의 ‘반강압 무역 수단(일명 무역 바주카포)’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세 여파 직격탄 맞은 파생상품 시장
미국 시장이 휴장한 상황에서 발표가 나오자, 유동성이 줄어든 암호화폐 파생상품 시장에서 변동성은 급격히 커졌다. 레버리지 포지션이 연쇄적으로 정리되며 하락 폭이 확대됐다.
코인글래스(CoinGlass)에 따르면 전체 청산 금액 가운데 7억8,800만 달러가 롱 포지션에서 발생했고, 숏 포지션 청산은 8,3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시장이 상승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던 상태에서 돌발 악재가 터졌다는 의미다.

거래소별로는 하이퍼리퀴드가 2억6,200만 달러로 가장 많은 청산을 기록했고, 바이비트(2억3,900만 달러), 바이낸스(1억7,200만 달러)가 뒤를 이었다. 모든 거래소에서 강제 청산의 90% 이상이 롱 포지션이었다.
연초 저점 대비 13% 회복했던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약정도 다시 감소 압력을 받고 있다. 다만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디레버리징이 과열을 식히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더 탄탄한 지지선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크립토퀀트의 애널리스트 다크포스트는 “미결제약정이 완만하게 회복되며 위험 선호 심리가 서서히 돌아오는 모습이었지만, 이번 관세 이슈가 그 흐름을 꺾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암호화폐뿐 아니라 전통 금융시장도 함께 약세를 보였다. S&P 500 선물은 0.7%, 나스닥 선물은 1% 하락했고, 유럽 증시 선물도 1.1% 떨어지며 전반적인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됐다.
반면 안전자산 선호로 금 가격은 1.5%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달러는 엔화 대비 0.3% 약세를 나타냈다.
앤넥스 웰스 매니지먼트(Annex Wealth Management)의 브라이언 제이콥슨 수석 전략가는 “행정명령이 아닌 SNS 발언이고 실제 시행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당장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려 할 가능성도 있다”며 “시장이 소화 국면에 들어가면 변동성은 다소 잦아들 수 있다”고 말했다.
보복 관세 맞불…미·유럽 관계 균열로 번지나
유럽 정상들은 정치적 입장 차이를 넘어 공동 대응에 나섰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동맹국을 상대로 한 관세는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우리는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미국의 그린란드 침공 가능성이 “푸틴을 가장 기쁘게 만들 시나리오”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나토(Nato)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외교정책 수장 카야 칼라스 역시 “중국과 러시아는 동맹국 간 분열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7월 타결된 EU·미국 무역협정의 비준 절차를 즉각 중단했다. 독일 출신 만프레드 베버 유럽의회 의원은 “미국산 제품에 적용된 0% 관세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당 협정은 다수의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없애는 대신, EU 제품에는 15%, 철강에는 50% 관세를 허용해 미국에 유리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EU는 또 지난해 여름 무역 휴전으로 미뤄뒀던 930억 유로 규모의 보복 관세를 재가동할 준비에 들어갔고, 프랑스는 미국 투자 보호 중단과 서비스 시장 접근 제한까지 가능한 반강압 수단 발동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도이치은행(Deutsche Bank)는 관세보다 더 큰 위험이 그 이후에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 리서치 총괄 조지 사라벨로스는 “무역이 아니라 자본이 무기화되는 상황이 시장에 훨씬 더 치명적”이라며, 유럽 투자자들이 보유한 약 8조 달러 규모의 미국 채권과 주식이 긴장 고조 시 이동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10% 관세가 유럽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을 2~3%포인트 낮출 것으로 추산했고, ING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는 이번 조치가 올해 유럽 GDP를 약 0.25%포인트 끌어내릴 것으로 전망했다.